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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70).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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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70).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70:1-5, 마태복음 5:44, 욥기 1:20-21 / 김형익 목사 / 수요예배설교 / 2020-11-18

말씀내용
1. 시편 70편의 성격과 40편과의 차이
시편 70편은 우리가 이미 상고한 40편의 13-17절의 내용과 미세한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동일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40편의 일부가 하나의 독립된 시로 여기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시편 14편과 53편도 거의 동일한 시편이었던 것을 본 적이 있고, 저는 시편 14편과 53편을 각각 설교하였듯이, 오늘도 시편 70편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을 이렇게 배치하신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유익과 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상고하는 가운데, 그 이유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편이 40:13-17과 미세한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 차이는 시편 70편이 더 절박하고 긴급한 상황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령 본문 5절을 40:17과 비교한다면, 여기에는 ‘속히’라는 말이 삽입되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도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1절과 5절의 ‘속히’라는 말을 강조한 것이고, 다윗이 그만큼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드리는 이 기도는 적어도 세 대상과 관련된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1절과 5절에 다윗 자신을 위한 기도인데, 그 내용은 ‘속히 이 상황에서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2-3절에서 다윗의 기도는 원수들을 향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4절에서 다윗의 기도는 의인들, 즉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간구입니다. 이 세 기도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라는 두 대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 자신과 다윗이 기도하는 의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원수들은 모두 불신자를 대표합니다. 이것은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을 나누는 1편에서부터 나타난 시편의 기조입니다. 본문도 신자와 불신자를 대조시킴으로써 그 결과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2. 두 종류의 사람들의 궁극적 운명의 차이(2-4; 왕상 19:18)
먼저 2-3절에서 원수들 곧 불신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입니다. 다윗의 생명을 죽이려고 다윗을 찾고 수색하는 자들이지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만이 아니라, 다윗의 인생에는 이런 원수들이 늘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로서, 다윗이 다치고 상하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것을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원수들이지요. 셋째로 그들은 “아하 아하 하는 자들”로서, 조롱하고 비웃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2-3절에서 이들을 향한 기도를 합니다. 그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고 뒤로 물러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과 반대편에는 지금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는 다윗 자신이 있습니다(1,5절). 그리고 다윗은 자신 외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도 않은 7000명’을 남겨두셨다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왕상 19:18). 그래서 다윗은 그 절박한 위기의 상황에서 그런 형제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먼저 그들은 ‘주를 찾는 모든 자들’입니다(4a). 다윗은 자기가 아는 몇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처럼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이 주를 찾을지라도 환난이라는 현실을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4b). 여기 주를 찾고,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두 가지는 참된 신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실한 특징들이 아닙니까? 찰스 스펄전은 참 신자의 특징을 5가지로 말합니다. 1)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2)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사랑한다. 3)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 선행을 사랑한다. 4) 구원이 하나님에 대하여 계시하는 것을 사랑한다. 5)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구원의 확실성을 사랑한다.
어쩌면 다윗은 이 두 가지 표현 안에 참된 신자들의 특징을 다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를 찾는 자들이고,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여기 2-4절에 묘사되는 두 종류의 사람의 대조는 그들이 이르게 될 궁극적 운명에서 큰 대조를 보입니다. 신자들의 궁극적 운명은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고,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원수들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수치와 무안을 겪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반복, 강조되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이들이 이르게 될 자리는 수치와 무안입니다. 그래서 기쁨과 수치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어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다윗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윗과 함께 이 진리의 말씀을 믿고 그렇게 될 것을 알지 않습니까?


3.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시 73:4-5,14; 삼상 13:14; 벧전 4:12; 히 4:16; 빌 4:6-7)
그런데 문제는 소망이 아니라 현실에 있습니다. 그 소망이 신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과 불신자들의 삶은 다른 의미에서 대조를 보이기도 합니다. 시편 73편 기자가 고백하듯이,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시 73:4-5)”라고 할만큼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은 부러움을 살만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실하게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다윗처럼 유난히 고난의 자리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시편 73:14).”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사무엘상 13:14; 참조 행 13:22).”
다윗은 심각한 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경건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생애는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왜 경건한 사람 다윗에게는 그토록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과 시련이 많았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징계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면에서, 그는 자기의 위대한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로서, 그 모든 고난을 짊어져야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난은 신약시대의 신자들이 모범과 표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베드로전서 4:12).”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신자와 불신자의 반응의 차이입니다. 특히 곤경과 위기의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아닙니다. 불신자도 미지의 신에게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신자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그 기도를 통해서 평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16).”
언제든지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를 아시는가 말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자기가 질 수 없을 만큼 무겁고 힘든 짐을 맡길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이것이 신자의 특권이고 이미 누리는 축복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는 환난과 어려움에 처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아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자녀들에게 허락하시는 최상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은 이해하고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4. 첫번째 기도—자신을 위한 기도, 급한 기도(1,5)
이제 본문에 나온 세 기도 가운데첫번째 기도, 다윗이 자신을 위해 드리는 간구를 살펴보지요. 1절과 5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70:1,5).”
‘속히’라는 말이 1절과 5절에 두 번 사용된 것은, 그만큼 긴박한 다윗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오늘 설교 제목 그대로입니다. 시간이 중요합니다. 늦으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이기에, 여기에는 하나님을 높인다거나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윗은 먼저 구할 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상황의 긴급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기도는 잘못된 기도는 아닙니다. 다윗은 조금 뒤에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예를 생각하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간구의 순서가 때로는 무너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저 배우고 암송해서 지키는 순서가 아니라, 평상시에 그 영혼의 간절한 바람이라면 그것은 언제든지 튀어나오고 말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5. 두번째 기도—원수들을 향한 기도(2-3; 마 5:44)
두번째 기도는, 원수들과 관련된 기도로 2-3절입니다.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시편 70:2–3).”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원수는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과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 그리고 ‘아하 아하 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은 이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고,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며,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필립 리처드는 이 기도가 원수를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원수를 대하는 그리스도의 태도의 표준입니다. 지금 다윗이 원수들과 관련하여 드리는 기도를 류폴드(H.C.Leupold)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다윗의 의도는 원수들의 멸망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경험을 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뒤로 물러간다는 게 그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악행을 지속할 수 없도록 다윗이 기도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이 원수들을 향한 최고의 기도라는 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6. 세번째 기도—의인들을 위한 기도(4; 욥 1:20-21)
끝으로 다윗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이 부분이 본문의 기도를 특별히 높은 수준의 기도로 만들어주는 대목입니다. 4절을 보지요.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편 70:4).”
다윗은 ‘주를 찾는 모든 자들’과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간구합니다. 자기처럼 고난 받는 성도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라고, 그들이 항상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위대하시다고 찬송하기를 바랍니다. 자기 상황이 너무 긴급해서 하나님의 영예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를 시작했던 다윗이 이제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조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다윗은 자신의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을 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응답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는 일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성도가 고난을 당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 속에서 기독교의 진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이것을 얼마나 쉽게 잃어버리는지 모릅니다. 다윗 자신이 그것을 깊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도들이 그 신령한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충만히 누리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욥이 처음 고난을 받게 되었을 때 했던 고백이 이것을 놀랍게 보여주는 고백일 것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기 1:20–21).”
어떻게 이 이상의 고백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보다 더 위대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있겠습니까? 성도는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을 위대하시다고 말하는 것이고, 성도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다윗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성도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7. 참되고 좋은 믿음 (5)
이제 마지막 구절인 5절을 봅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70:5).”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은 이 기도에 나타난 다윗의 믿음은 높은 수준의 믿음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적으로 높은 수준의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구할 권리가 없음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특징을 가집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는 고백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금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자격이 있고 합당하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온전히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으로 높은 수준의 신앙인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만일 어떤 자격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적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자원은 바닥났지만, 주님이 계심을 아는 것이 참되고 좋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도울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유일한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이 기도에는 칼빈이 말한 이중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크심을 알았기 때문에 얻은 지식이고 이것이 참된 성도의 기도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8. “속히 오소서” (5; 딛 2:13; 계 22:20; 빌 3:20)
다윗은 “속히 내게 임하소서…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구함으로써 이 기도를 마칩니다. 그렇습니다. 현존하는 위기가 끝나기까지 다윗은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물론 개별적인 상황들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무엇보다도 신약의 성도들이 함께 구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디도서 2:13).”
신자는 그날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의 온전한 안식은 그날 주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기도가 이것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성도는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날에 주어질 복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스런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알기에, 거기로부터 오시는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빌 3:20)? 긴급하고 절박한 고난의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편안한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옵소서.”라고 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