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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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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

누가복음 10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2-24

말씀내용
10장.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 (찬 484)

1. 12제자를 파송하시는 기사는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지만, 10장 서두에 70제자 파송의 기사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었다(1~20). 이것은 누가복음이 이방인을 위해서 쓰여진 성경이라는 특성을 보여준다. 12가 구약 12지파 즉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숫자라면, 70은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70개의 민족 즉 모든 이방인을 상징하는 숫자다. 그래서 12제자 파송에 이어 70제자를 파송하신 것은 특별히 이방인 전도와 관련이 깊다. 이때 주님은 기도할 것을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2). 70명을 보낸다고 해도 이들의 힘으로 온 세상을 추수할 수 없기에 주님은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께 추수할 일군을 더 보내달라고 기도하며 이 일을 감당하라고 하셨다. 오늘날 세계복음화의 일선에서 수고하는 모든 사역자들에게도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기도는 선교와 함께 간다. 모든 말씀 사역이 그렇다. 그리고 이 일은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이 위험한 일이며(3) 긴박한 일이다. 그래서 보냄을 받은 제자들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인사나 주고 받을만한 처지가 못 된다(3b). 주님은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셨다(4,7~8). 주님께서 보내신 자들의 말을 듣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한 것이고 주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거절한 것이다(16). 70제자들은 기쁨으로 돌아왔다(17). 주님의 약속대로 귀신들이 주의 이름 앞에 떨며 쫓겨났고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일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신다(20).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얻은 신분이 무엇인지 망각한다면 이 모든 승리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2. 주님이 기뻐하셨다는 매우 드문 표현이 나온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21)." 이것은 주님께서 단 한 번만 기뻐하셨다는 의미는 아니다(요 17:13). 주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낮음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계시 없이 하나님을 알 자는 없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낮고 천한 사람,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지시는 것은 주님께 기쁨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알려지기를 기뻐하신다. 스스로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알리신다.

3. 한 율법교사가 주님을 시험하려고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25). 그는 율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결론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27). 그것을 행하면 살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자기 이웃이 누구냐고 주님께 묻는다. 여기서 주님은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30~37). 비유 속의 강도 만난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고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유대인일 것이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어 버려진 이 사람을 제사장도, 레위인도 보고서 그냥 지나갔다. 그 다음에 지나간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다. 그리고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그 사람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오는 길에 갚아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했다. 주님의 질문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36).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가를 소극적으로 묻는 율법교사에게 이웃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대답하신다. 신앙은 종교적 형식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온갖 종교적 형식에 흠 없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4. 주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38). 두 자매는 나사로와 한 형제였다. 마르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마리아는 주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는 마음이 분해서 주님께 마리아를 책망해달라고 하지만, 주님은 마르다의 마음 속에 있는 분한 마음이 좋지 않다고 지적하시고 마리아가 좋은 쪽을 선택해서 하고 있다면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신다. 어려운 말씀이다. 인간적으로 우리는 마르다의 마음을 이해하고 마리아를 편들기 쉽지 않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음식으로 분주하게 섬기며 우리 마음에 형제를 향해 분한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다. 주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은 중요한 본질이다. 교회에서의 모든 섬김도 그렇다. 우리는 마르다와 같은 경험을 종종 한다. 말씀 사역에 앞서는 섬김과 봉사는 없다. 마르다의 봉사는 꼭 필요한 것이며, 마르다가 기쁨으로 그 일을 했다면 그로 족할 일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합당하다.

5.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언제나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기뻐하고, 어린 아이같이 주를 신뢰함으로 살며, 종교적으로 치장된 이웃 사랑이 아닌 참된 이웃 사랑을 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섬기되 주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으며 기쁨으로 모든 섬김을 감당하게 하옵소서."